그날 그 시간에
삶 안에는 기적적인 순간이 있다 1초만 엇나가도 만날수 없는 순간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런것을 운명이라고 말해도 되는것인가 나는 하느님의 계획이라고 믿는다 내 생의 길목에 그날 그 사건의
언약이 되어 있다는 것을, 그런 순간에 생이 새롭게 열리고 새로운 열정으로 살아갈수 잇는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이다
바로 그날 그 시간에.....
결혼후 첫 아이를 낳고 둘째를 몸에 품고 있을 때였다 그 시절 나는 공황장애 같은 병을 앓고 있었는데가장 심하게
나타나는 것이 무엇인가를 찾는 병이었다 밤 두시 세시 온 집안의 서랍을 열고 닫고를 하는 동안 남편은 잠을 제대로 이룰수가
없어 고함을 치는 경우가 많았다 ;도대체 뭘 찮아!"
그런데 문제는 나도 무엇을 찾는지 모르고 있엇다 억지로 병원을 데리고 가려는 남편을 피해 다니는 어느날 나는 집에서 입은 옷 그대로
세수도 하지 않은 얼굴로 버스를 타고 내린곳이 종로 2가였다 만날 사람도 없었고 물론갈곳도 없이 걷고 있는 나는 내가 돌아갈 집이
어디인지도 떠오르지 않은 막막한 상태였던 것이다 그때 그날 그 시간에... :신 군 아이가?"
그 막막한 날 알아보는 사람은 바로 박목월 선생님이셨다 나는 그 순간 내가 어떤 상태인지를 잊어버리고 반갑게 인사를 햇다
:선생님!" ;차나 한잔 하자,
선생님은 YMCA 에서 결혼식이 잇는데 30분이 남았으니 커피 한잔을 하고 가라는 것이었다 나는 엉거추춤 따라갔고 머릿속이 텅 비어있었다
찻집은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쉽게 빈 자리로 갔다,의자에 앉으시다가 선생님이 물으셨다 "그래 지금도 글 쓰나?'
아 나는 알았다 그날 그 순간....내가 그토록 찾아 헤메던 것이 :글"이었구나 하는것을....나는 새 생명을 반납받은듯 누군가가 신대륙을
발견했듯 앞이 환하게 밝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래 글 이었어 ,시 라는 것이 내 영혼을 누르고 있었던 거야, 그야말로 신대륙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이다 나는 그 순간 집에 누워있는 아기나 뱃속에 자라는 새 생명에 대해 깜빡 잊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내가 시라는 것에 대한
집착은 모성보다 더 강했는지 모른다 나는 이기적인 여자다 모성을 앞지르는 것이 나에게 있엇다니.....선생님은 나를 일요일마다 한번
댁에서 시를 배우라고 하셨다 : 단데이 해야지.....: ;네 선생님,"
갑자기 힘이 솟는 강력한 힘으로 대답을 하고 임신부가 지켜야할 모든 조건들을 무시했다 커피를 줄줄이 마시고 밤을 새우고.....
박목월 선생님께 가져갈 시를 만드는 일만이 유일하게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원효로를 가기 시작했고 야단도 많이 들었다
무시도 당했다 :이래 갖고 되겠나!"
나는 원효로의 하얀 대문을 나오면서 다짐했었다 결코 이것이 마지막이다 절대로 오지 않겠다 절대로 이 하얀 대문을 들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나는 갔고 그러나 나는 열번을 갔고 선생님은 어느날 사모님께 말씀하셨다
:엄마야 신군 이제 될끼다, 선생님은 사모님을 엄마야로 부르셨고 사모님은 아부지 라고 부르셨다 선생님은 그날 저녁을 함께 드시면서
숨겨둔 이야기를 하셨다 :종로에서 신 군 만났을때 놀랬다 뭔가 잘못됐다 라고 생각 했었제, 호되게 한것은 여겨내는 힘을 본거제....
그래서 안오면 그만이고 그래도 오면 되는기고.....내가 그렇게 생각했재 원효로 길목나가면서 울었제?이젠 될끼다,"
그렇게 선생님은 내 문학의 스승이 아닌 문학의 아버지가 된것이다 나는 복이 많다 대학의 문학의 밤에서 가끔 뵙던 선생님이 내 개인적
인연으로 다시 태어난것은 순전히 내 복이다 그러나 복이란 가지고 있기만 하면 사라지는 법이다
나는 그것을 안다 그렇게 신이 주신 복을 내가 다듬고 깨우치고 만들고 최선을 다해 새로운 그 무엇으로 창작해 내는 일이야 말로
복을 키우는 일이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신이주신 복을 내것으로 정착 시키기 위해서 내가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덕목 이엇던 것이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가장 많이 소비하는 돈은 책값이었고 읽었고 썼던 것이다
외출은 단지 시장 가는 길이엇는데 먹을 것을 사는 일보다 서점에 더 머물고 있었던 것은 그래도 그런 나날이 있었기에 오늘:시인" 이란
이름을 지니고 잇는 것일 것이다 선생님은 첫 시집의 발문을 맡았고 <奉獻文字>라는 제목은 김남조 선생님이 붙였다 영원히 문자를 바치고
살아는 .....출판기념회를 해야 한다고 서둔 분도 박목월 김남조 선생님이셨다 그 날 그 시간에 약속도 없이 우연을 만들어 하느님께서는
내게 시의 부활을 선물하셨던 것은 내 생의 소중한 전환점 이었던 것이다 선생님과 조금은 가까워 지면서 나는 어느날 질문을 햇다
그때는 선생님의 <나그네>가 모든 교과서에 실려있었다 그래서 물었다, :선생님 대표작은 나그네지요"? 그럼 그렇고 말고..... 그렇게
대답할줄 나는 알았다 그런데 그분은 전혀 다른 답을 하셨다
:내 대표작은 오늘 밤에 쓸끼다,"
내가 나의 미래의 시간에 대해 고민하게 된것은 그때부터다 선생님은 너무 많은 것을 주셨다, 깨우침을.....
신달자 시인
문학의 집 서울에서 발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