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과 나
모든 복잡을 뚫고 단순하게 적을 제압하라
<질권도의 길> 중에서
이소룡을 처음 봤을 때 나는 검은 교복을 입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
첫눈에 나는 그의 팬이 되었고 열렬한 신봉자가 되었다 TV가 주도하는 안방 문화가
막 자리 잡아가던 즈음 뛰어노는 데서 기쁨을 얻던 체화의 단계에서 눈으로 보는 것을 더 즐겨하는
관념의 단계로 전환하는 시대에 나타났던 키치 중독 현상이 나에게는 이소룡이라는 걸출한 배우를 끼고
나타났던 셈이다
전주 피카다리 극장이었던가 이소룡의 <정무문>을 처음 본 그날 나는 그의 카리스마에 완전히 압도 당했다
이소룡이 나쁜사람을 태운 인력거를 번쩍 들었을때 그의 팔뚝에 힘껏 불거져 나온 핏줄을 보고 매끈한 내 팔뚝을 더듬으며
부끄러움에 빠지기도 햇으며 검은색 차이나복이 휙휙 소리를 내며 내 지르는 발은 어찌 그리 빠르던지 놀라움에 마른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나는 스크린 속의 이소룡에게 마치 눈앞에 있는 듯 고개를 깊이 숙였다 :사부님" 절 받아 주십시요"
그때부터 나는 사부의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시간이 나는 대로 영화관을 찾았다 80원에 영화 두 편을 동시에 보여주던 <전주 제일극장>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 놓은것도 그즈음이었다 거긴 어린시절 내 상상력의 모태이자 성숙의 기반이었다 프로그램은 당시 이소룡의 우후죽순
처럼 쏱아져나온 3류 무술영화와 <연자의 전성시대>류의 에로 영화가 하나씩 매치된 포멧이었다 복사관 이어서인지 직직 거리는 음향과
잘리는 필림 때문에지금 같으면 짜증도 났으련만 거기다 구석에서 심심찮게 쥐까지 돌아다녔으니 문화 운운하며 영화관을 찾는 지금의
분위기와는 영 다른 공간 이었음에도 그땐 그 시공이 얼마나 행복햇는지 모른다
필름이 끊길때마다 사람들은 소리를 지르는게 관행처럼 되어 있었다 그래서 극장 측에서는 소위 기도(문지기)를 두어 이를 제지했다
나도 따라 우 하고 소리를 지르다 시범케이스로 걸려 기도한테 엄청 두들겨 맞고 그 울분에 며칠씩 씩씩거리며 억울해 하던 기억이 난다
나는 그때 밤마다 돌려차기와 이단 옆차기를 수없이 되풀이 하며 그 기도와 한판 승부를 상상하였으나 끝내 기회를 가지지 못하였다
막 몸의 틀을 갖추는 시기의 우리에게 이소룡의 매력은 무엇보다 근육이었다 쌍절곤을 양손에 들고 쭉 내밀 때 넒어지는 그의 어깨 죽지와
갈비뼈를 따라 드러나는 근육과 배에 박히는 왕:王,자 근육은 정말 환상이었다 나는 집 마당에 있던 아버지 사무실의 한쪽을 얻어 아령이며
역기 줄넘기 등과 전신이 비치는 커다란 거울을 가져다 놓앗다 그리고이소룡이 주먹을 단련하기 위해 고안햇다는 나무통에 막대기를 꽃은
도구를 설치했다 나는 아침저녂으로 :사망유희의 이소룡처럼 노란 체육복을 입고 그 방에 들어가 그 방에 들어가 거울 앞에서 발차기를 하고
쌍절곤을 휘둘렀다
이사이 이소룡은 나만의 우상이 아닌 우리또래전체의 우상이 되었다 나는 나만의 이소룡을 만들기 위해 연구를 거듭해야 했다
그의 권법뿐 아니라 사생활이 실린 잡지를 들춰가며 그에 대한 지식을 넓혀갓다 친구들에게 이소룡이 어린시절 홍콩의 아역 배우엿으며
청년기에 미국으로 건너가 TV에 단역 출연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상대 여배우 틴패이가 커다란 색안경을 끼고 그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진을
보여주었다 그의 무술에 심오한 사상이 깃들어 있는 이유는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한 덕분이라고 제법 진지한 표정으로 설명하는 것도 당시 내가
빠뜨리지 않던 레퍼트리였다
이소룡의 또 다른 매력은 과음과 허무한 표정이엇다 상대를 향해 주먹이나발을 내지를 때 내는 신음 특히 질기게 버티는 상대를 결정적으로
쓰러뜨리는 순간 상대의 상대의 배를 때린 주먹이 부르르 떨면서 흐르는 그의 괴성은 보는 이의 가슴을 전율케 하는 것이었다
거기다 마침 써선 안될 폭력을 쓰고 말앗다는 듯 진한 허무가 깔린 그의 일그러진 표정은 나로 하여금 사내의 길을 깨우쳤다
:남자는 저래야해" 사내의 폭력은 어쩔수 없을때 마지못해 쓰는 최후의 수단일 뿐이야" 이소룡의 폭력은 언제나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엇다
<당산대형>에서는 핍박당하는 노동지를 위한 폭발이엇으며 <정무문 에서는 일본 제국주의에 억압된 중국 민족을 대변 하는 폭력이었다
<용쟁호투>도 맥룡과강>도 마찬가지다 그의 폭력에는 약자의 편에서 고통을 나누고자 하는 애절한 페이소스가 베어있다
폭력을 사용하고 난 후 과음과 함께 짓는 그 허무한 표정은바로 이런 이중성,즉 정당하지 못한 폭력으로 정당한 세상을 추구하는 내적 모순이
정당성을 확보하는 패러독스로 승화하는 순간의 고통을 함축하고 있다 나는 그때 폭력의 미학 이란 폭력이 정당성을 확보해 나가는 이중적이고
모순된 상황을 함축적으로 표현하는 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깨달앗는지도 모른다
나는 이소룡이 되고 싶엇다 그의 주검이 옮겨진 구룡반도에 몰려든 사람들을 보면서 나도 저런 죽음을 맞이 해야지 생각했고
틴페이 같은 예쁜 애인과 사귀는 꿈을 꾸었다 당시 방ㄹ간된 삼류잡지에 의하면 구룡반도에는 아직도 이소룡이 살아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고 했다 어디선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비권 을 연마하고 있다가 갑자기 세상에 나와 모든 악한 세력을 평정할것
아라고 햇다 그때 나는 그 말을 철썩같이 믿었다 이제 나는 그 저변에 이소룡을 상업화하여 자본을 챙기려는 엔터테이너들의 상술이
끼었음을 안다
그렇다 하더라도 내가 중학시절 보았던 그 이소룡은 지금도 가끔씩 특히 인간과 돈의 복잡한 계산으로 돌아가는 일상에 지쳐
잿빛하는을 바라보며 한숨 지을때 내 가슴 깊은 곳에 괴음을 울리며 그 허무한 표정으로 나타난다 그리고는 엄지 손가락으로 코끝을
슬쩍 퉁기며 말하는 것이다 :기억해봐 네가 닮고자 했던 어린시절을,그리고 그때 네게 한 말이 있잖아, 모든 복잡을 뚫고 단순하게 생각을
정리해 알겠니"?
너는 아름답고 발췌 수필가 심현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