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백의 판단을 넘어 무지개빛 :사유"의 세계로
작가 정여울
몇 년 전부터 인문학 강연이 끝날 때마다 스태프들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 여러분. 나가실때 반드시 설문 조사에 참여해 주세요 ,:강의에 대한 평가 문항입니다"
두시간 가까이 목이터져라 강의하고 나서 가장 먼저 들리는 소리가 이 강의를 평가 하라는
명령어 일 때 다리에 힘이 쭉 풀리고다 만족도를 1 에서 5로 나누어 평가하는 수치상의 평가서를
작성하기 위해 내 강의를 들으러 오신것은 아닐텐데 행정상 편의를 위한 설문조사 겠지만 막상 강의에
열심히 참여해 주신 분 들에게도 "강의를 천천히 말없이 곱씹을 자유"를 빼앗는것 아닌가
각박한 세상에서 문학과 심리학, 철학과 예술의 향기를 느끼기 위해 늦은 밤에도 인문학 강의를 들으러
오시는 분들에게 "이 강의를 숫자로 판단하라" 는 질문은 강연의 본래 취지에도 어긋난다 ,
더 깊은 :사유"의 세계로 자유로이 헤엄쳐야 할 독자들을 흑백의 :판단" 으로 가두어 버리는것은 아닌가,
이렇득 "긍정이냐 부정이냐"식의 판단을 재촉하고 우리 삶에 필요한 질문도 해답도 직접 찿아가는 진정한
"사유" 의 물꼬를 차단해 버리는 행정편의주의는 곳곳에 만연해있다 "대학평가"라는 명목으로 모든대핟이
일률적으로 순위를 매기고 "업무평가"라는 명분으로 개개인의 다채로운 개성을 말살해 버리는 "판단"의
성급함은 "사유"의 과정 자체를 향유하는 인간 정신의 탐험 가치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부산이나 광주까지
산 넘고 물 건너 달려가 두 세 시간 강의한뒤 "오늘도 무사히 해냈구나" 하는 안도감에 뿌듯 해지다 가도
강의가 끝나자 마자 5지선다형의 강의 평가서를 작성하는 사람들을 보면 "우리는 평생 저런 숫자와 o x 식
판단의 울타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걸까 "바로 저런 판단적 사고에서 벗어나기 위해 인문학 공부를 하는것인데"
하는 안타까움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판단"의 본질이 그때그때 상황에 따른 수동적 리액션이라면 사유의 본질은
창조적 액션이다,무지갯빛 스팩트럼처럼 자유로이 사유할수 있는 무한한 잠재력과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 바로
판단의 조급함이다
무언가의 자유가 침해당할 때 비로소 그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데 우리에게 자꾸 "판단"을 강요하는 사회를
돌아보니 이제야 "사유"의 소중함이 더욱 절실해진다 강의 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글쓰기의비결"인데 나는
내 글 쓰기의 진정한 비결이 "판단을 최대한 미루고 사유를 최대한 복잡하게 만드는것,임을 깨달았다
나는 주어진 질문지에 "예스/노" 로 대답하기 보다는 "우리에게 소중한 질문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사유의힘"을 믿는다
나는 쉽게 판단 내리지 않고 사유의 실마리를 끝까지 물어띁는 버릇이 있다 어떤 강의를 들어도 어떤 책을 읽어도
그것이 내 머리를 거쳐 가슴으로 잔정 전달되기 까지 어찌보면 지긋지긋하게 기나긴 그 과정을 즐기고 싶어 한다
단순히 인내하거나 참아내는것이 아니라 그 느려터진 사유의 과정 자체를 즐긴다 판단의 날렵함이 아니라
사유의 느린 되새김질이 지금의 나로 만들었다 재빠르게 결론 내리고 확실한 답이 있는공부만 추구했다면 이런
길을 가지 않았을 것이다 쉽게 판단 내리지 않고 사유의 풀잎사귀를 끊임없이 되새김질하면 그저 풀잎에 불과하던
그 사유의 잎사귀 어느 순간 천상의 약초처럼 누구도 발견 해내지 못한 인생의 묘약처럼 그야말로 눈부시게 마음속
그늘을 환하게 비춰 줄 때가있다 그때가 바로 글쓰기의 영감이 떠오르는 순간이다 흑백의 판단을 넘어 무지갯빛
사유로 도약하는 순간 우리는 각자가 지닌 최고의 가능성 인간정신의 빛나는 클라이맥스와 만날수잇다,